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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당, 어떻게 건설되는 당이어야 하는가?
[노동과 투쟁 ]
노동자공동투쟁
앞 다퉈 사회주의 당건설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가히 백가쟁명의 시기다. 사회주의라는 말 자체를 꺼내지도 못했던 상황, 당건설을 막연한 미래로 사고했던 상황에 비해 사회주의 당건설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음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사회주의 당건설 논의가 올바른 내용과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당건설 논의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문제가 있다.
공개적 사회주의 당 건설
열려진 공간, 합법공간은 이를 치밀하고 대담하게 활용해야 한다. 비공개적인 활동방식만을 고집한다면 그 정치세력은 대중과의 결합에 있어서 대단히 제한적이고, 고립된 자족적인 활동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비공개적 활동만으로는 대중과의 결합과 지도력의 획득, 영향력의 확대와 조직의 강화, 대중적 검증.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열려진 공간, 합법공간을 활용한다는 것은 공개적으로 당건설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근 벌어지는 당건설 논의는 모두 공개적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사노련은 국가보안법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담하게 공개적으로 사회주의를 선전선동하여 공개적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사노련이 국가보안법 침탈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처음으로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질서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와 현실 사회주의 사회를 ‘반동체제’로 보는 국가자본주의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노련 활동가들이 석방된 이후에도 자민통 활동가들은 여전히 혹독한 탄압을 당하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 공안기구는 이적단체로 판명나거나 실질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정치세력이 된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탄압하거나 합법주의적으로 길들이려 할 것이다.
침탈에 맞서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당연히 대중과의 결합을 강화하고, 대중운동 속에서 보호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사노련 핵심 7인이 거의 동시에 침탈을 당하고, 한 명은 운좋게 침탈을 피해간 것을 볼 때 공개적 방식으로 사회주의 당건설을 하겠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공개적 당건설은 조직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파괴하고 이것은 조직과 조직의 사업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할 수 있다. 공개적 조직은 자칫하면 조직의 핵심사상을 공개적 활동방식과 수준에 맞춰서 수위를 조절하면서 결국에는 합법주의로 경도되어 갈 것이다. 오세철 운영위원장이 사노련은 “사회주의 연구를 하는 단체이지 ‘당장 국가를 전복시키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이나, 국가보안법 수사협조 논란을 보면 이 역시 불구속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자 공개선언 주장도 공개적 사회주의 당건설 계획이 만든 해프닝이다. 조직형식은 결코 정치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정치사상 원칙이 불분명한 당 건설
현재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추진하는 세력들의 정치사상의 원칙은 무엇인가? 그 동안의 당건설 논의나 지난 18일 당건설 토론에서도 맑스-레닌주의 원칙에 대한 확인은 한 마디도 없었다. 맑스-레닌주의 원칙은 사회주의 당건설의 사상적, 정치적, 조직적 지침이다. 노힘은 이와 관련해서 “강령토론과 이에 근거한 강령 합의, 운동전략 마련과 운동주체의 혁신이 선 전제된 가운데 당건설 운동을 구체적 일정에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건설될 당의 성격에 대한 합의가 된다면, 당건설 일정을 본궤도에 올림으로써, 운동주체의 혁신과 운동전략의 마련의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고 봄”이라고 하고 있다.
강령은 조직의 설계도이자 청사진이다. 강령합의 없이 어떻게 건설될 운동전략과 당의 성격을 합의할 수 있는가? 운동주체의 혁신과 자기반성과 평가 없이 어떻게 대중운동을 혁신하고 재편성하여 당건설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
물론 강령은 대중과의 결합과 검증을 통해 현실변혁을 추진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반드시 강령의 세세한 부분을 다 합의하고 나서 통일을 추구하고 당건설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적 수준의 통일성을 위한 강령적 합의는 맑스레닌주의 사상과 원칙에 기반해야 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같은 의회주의의 변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노힘은 21세기 사회주의를 “20세기의 사회주의 운동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와 오류를 넘어서며, 21세기라는 현대사회의 조건에 조응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과연 노힘이 계승하고자 하는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성과는 무엇이고, 그 한계와 오류는 무엇인가? 그리고 21세기 현대사회의 조건에 조응하는 것은 무엇인가? 노힘은 이와 관련해서 “여성, 생태, 소수자 등 계급모순으로 단순 환원할 수 없는 의제와 관점”을 말하고 있다. 노힘의 이 관점에는 계급 중심성이 여성, 생태, 소수자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계급론은 계급모순으로 단순 환원하고 다른 것을 배제하는 개념이 아니라 여성, 생태, 소수자의 문제도 계급적 관점으로 인식하고 실천한다는 것이다. 여성, 생태, 소수자의 문제는 계급모순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힘의 ‘21세기 사회주의’는 이런 점에서 신좌파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조직형식상의 전환으로 건설되는 당건설
투쟁 없는 산별건설, 조직형식상의 전환만을 꾀하는 관료적 산별노조 건설에 대해 지금 당건설을 추진하는 모든 세력들이 다 같이 비판해 왔다. 그런데 이렇게 자명한 조직건설의 원칙이 유독 당건설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산별노조라는 대중조직 건설과 당건설이 그 성격을 달리하기 때문인가? 혹자는 당건설 과정과 먼저 당건설을 통해 대중운동을 혁신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해방연대는 현대자동차 민투위 문제라는 노힘의 과거 전력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이것을 노힘과의 당건설을 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노힘은 이에 대해 당적 질서 속에서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기업별 노조 하에서의 한계 때문에 비정규직과 연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산별건설을 통해 산별의식을 획득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
산별노조도 대중‘조직’ 건설이고, 당건설도 당‘조직’ 건설이다. 산별노조 건설에 적용됐던 원칙은 당조직 건설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기혁신과 운동의 혁신 없는 당건설은 관료적 당건설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노힘의 민투위 문제는 현상적으로는 노힘의 기풍의 문제지만 본질적으로는 노힘의 잘못된 조직노선과 정치사상, 당건설 방식의 문제다. 단순히 민투위 일부를 제명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힘은 2010년 당건설 계획을 제출하고 있고, 해방연대는 이를 비판하면서도 늦어도 2010년 내에 당을 건설한다고 하고 있다. 사노련은 선진 활동가들을 주체로 내세우면서 200여명의 무소속 활동가들을 조직해서 전국토론회를 개최하고 공동투쟁을 결의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일정박기 식이나 수백의 활동가들을 규합한다고 해서 당건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립분산되고 수세적이고 패배적인 대중운동 정세 전체를 바꿔내고, 이를 통해 새로운 당적 퇴적물들이 마련되어야만 당건설의 새로운 혁명적, 선진적 주체가 형성될 수 있다. 이것이 당건설이 필요하다는 객관적 필요성과 주체역량의 빈곤의 격차를 실질적으로 메우는 유일한 길이다. 공황과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는 다시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정치사상을 다지고,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위한 정치적 전망을 세워나갈 기회가 되고 있다.
일정박기 식 당건설이 아니라 어떤 당, 무엇을 통한 당건설인지의 원칙을 분명히 세우자. 그리고 자본주의에 맞서는 대중운동의 거대한 투쟁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해서 당건설의 혁명적 주체를 만들어 내자. 이것이 당건설의 실질적인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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